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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작공개] 오오후리 하이힐 합작합작 2016. 5. 17. 02:00
오오후리 하이힐 합작
참여자 - 치느/ DDOL /sano /스포츠브라 /은랑/ 삼베/ 구구/ 리스티엘/ 익명/
버들/ 니오/ 호련/ 연유/ 글여/ 별로/ 나폴/ 현 /623 /케릴
주최 및 발편집 - 새묘
너무 너무 고생많이 하셨습니다 ㅠ.ㅠ!!!!
사심으로 열어서 너무 보배로운 연성들봐서 기분이 좋네요 ^*^ 헿
미하시 생일날 아름다운 하이힐후리들 보면서 하루 힘내세요!!!!
는....편집이 멍멍이 같지만 ㅎㅎ
여담이지만......누가 비공개인지 까먹어서....다 공개를 해버렸네요...죄송합니다 ㅠ.ㅠ;;
+) 익명이신분은 작품에 따로 '익명'기재는 하지 않았습니다.
문제시 @seamyo_y로 연락주세요!
http://guswjd7749.wix.com/oofuri-highheels
http://guswjd7749.wix.com/oofuri-highheels
wix는 모바일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 개인이 저작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 참가자 외에 가져가지 말아주세요.
하나타지 _ 구구
나는 맥주 한 병을 들고 구석 자리의 비어있는 탁자에 가 앉았다. 가지고 온 쇼핑백은 발치에 내려놓았다. 클럽 안은 비좁았다. 작은 원형 탁자를 열 두 개 정도 들여놨을 뿐인데도 탁자와 탁자 사이를 지나려면 몸을 완전히 옆으로 비틀어야 했다.
손님은 얼마 되지 않았다. 나를 비롯해, 몇 개의 테이블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전부였다. 그들은 턱을 괴거나 테이블에 엎드리듯 기대 앉아 무대 위를 바라보고 있었으며, 이따금 크게 한숨이라도 쉬는 듯이 어깨를 들썩거렸다. 아직 평일이었고, 초저녁이었다. 늦은 밤이 되면 객석은 모두 들이차고 뒤에도 서 있는 사람들이 즐비해질 것이다.
무대는 객석을 향해 반원 형태로 튀어나와 있었다. 무릎 정도 높이의 무대 위에서, 짧은 가죽 옷을 입은 남자가 빠른 비트의 일렉트로닉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있었다. 남자는 무대 가운데에 설치된 철봉에 몸을 비비거나, 붙잡고 돌거나, 검은 스타킹을 신은 다리를 휘감으며 현란하게 움직였다. 신발은 신고 있지 않았다. 조명의 열기와, 환기가 잘 안 되는 건물의 구조 탓인지 클럽 안은 무덥고 습했다. 등과 이마, 콧잔등에 비지땀이 솟고 있었다. 나는 양복 자켓을 벗어 의자에 걸쳐두었다. 넥타이도 조금 풀었다. 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
주머니에서 짧은 진동이 울렸다. 문자 알림음이었다. [변명이라도 해봐] 미와코였다. 나는 맥주를 내려놓고 두 엄지손가락으로 타자를 쳤다. [친구 꺼 라니까.] 답장은 금방 왔다 [그 친구가 누군데?]
나는 손가락을 멈췄다. 누군가 어깨를 두드렸기 때문이었다. 뒤를 돌아보자, 험상궂은 얼굴의 덩치 큰 웨이터가 서 있었다. 손님, 촬영이 금지되어 있어서 휴대폰 사용은 안 됩니다. 아, 죄송합니다. 나는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웨이터는 내 얼굴을 흘끔 보고는 곧 다른 곳으로 가 버렸다. 낯이 뜨거워졌다. 무대 위에서 춤추는 남자가 언제부터인지 내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음악은 어느새 느리고 끈적한 것으로 바뀌어 있었다. 현란한 색의 조명이 만화경처럼 남자의 얼굴과 흐느적거리는 몸을 알록달록하게 만들었다. 알록달록한 얼굴이 싱긋 웃었다. 남자는 무대 앞으로 나오더니, 상체에 하고 있던 코르셋을 벗어 던졌다. 어디선가 맥없는 휘파람과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공연은 남자가 아랫도리까지 모두 벗어던진 후에야 끝이 났다. 나는 쇼핑백을 집어 들고 바깥으로 나왔다. 나는 쇼 배우 대기실로 이어지는 좁은 복도를 걸었다. 빈속에 맥주를 두 병이나 연거푸 마셨더니 몸이 노곤하니 취기가 돌았다.
대기실 문 앞에는 아까 봤던 덩치 큰 웨이터가 서 있었다. 웨이터가 내 쪽을 보았다. 그는 다소 험악한 태도로 나의 앞을 막아섰다. 이쪽은 관계자 외 출입 금지입니다. 돌아서 나가세요. 웨이터가 손가락으로 등 뒤쪽을 가리켰다. 그... 나는 쇼핑백을 들어 보였다. 아까 무대 위에 있던 친구한테 전해줄 물건이 있어서요. 웨이터는 쇼핑백을 보더니 피식 웃었다. 선물이라면 제가 전해 드리죠. 나는 고개를 저었다. 선물이 아닙니다. 애초에 그 친구 물건이라고요.
웨이터는 내 말을 믿지 않는 듯 했다. 어쨌든 제가 전해 드리죠. 그는 손을 뻗어 내가 든 쇼핑백을 가로채려 했다. 나는 쇼핑백을 등 뒤로 숨겼다. 그 친구한테 할 말이 있어서 그런데, 제가 직접 전해주면 안 되겠습니까? 웨이터는 인상을 썼다. 말이라면 제가 전해 드리죠. 아뇨, 직접 해야 하는 말이라...... 그러자 웨이터는 위협적으로 내 어깨를 밀쳐냈다. 손님, 취하셨으면 곱게 집에 가셔야죠. 더 이상 고집을 피웠다간 한 대 맞을 기세였다. 그의 주먹은 크고 다부져 보였다. 그다지 취한 건 아니었다. 공연장 안의 더위 때문에 얼굴이 평소보다 더 붉어져 있을 뿐이었다. 포기하고 돌아갈까 생각하는데, 웨이터의 등 뒤에서 대기실 문이 벌컥 열렸다.
하나이.
남자는 머리에 수건을 터번처럼 감고 있었다. 샤워를 하고 막 나온 참인지, 목덜미에 미처 닦지 못한 물기가 흘렀다. 헐렁한 티셔츠에 짧은 추리닝 반바지 차림의 남자는, 자기 발에 비해 커다란 아디다스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 제 친구에요. 잠깐만 들어오게 해 주세요. 남자는 웨이터를 지나쳐서 나에게로 오더니, 친근하게 내 손목을 잡고는 대기실 안으로 끌고 들어갔다.
편하게 앉아. 남자가 말했다. 남자의 발걸음은 마치 토끼처럼 통통거렸다. 대기실 안엔 3인용 가죽 소파가 있었으며, 한 쪽 벽에는 무대 의상이 가득 걸린 행거가, 또 한 쪽에는 커다란 거울이 달린 화장대가 놓여있었다. 행거에 걸린 의상들은 하나같이 천이 적어 보였다. 남자는 나를 등지고, 수건으로 젖은 머리를 분주히 털었다. 나는 남자의 이름을 불렀다. 타지마.
타지마는 뒤돌아 나를 보았다. 나는 그에게 쇼핑백을 건넸다. 이게 뭐야? 그는 쇼핑백 안을 들여다보더니 빙그레 웃었다. 내 하이힐이잖아. 가져다 준거야? 내 슬리퍼 내놔. 나는 그가 신고 있는 슬리퍼를 가리켰다. 그는 입술을 비죽 내밀었다. 잠깐 빌려온 건데. 마음대로 빌려가지 말란 말이야. 나는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째째해. 하나이. 그는 툴툴거리면서도, 순순히 슬리퍼를 벗어 내게 주었다. 가까이서 본 타지마의 발은 울퉁불퉁했다. 발가락 마디마다 굳은살이 배겨 있었다. 타지마는 쇼핑백 안에서 하이힐을 꺼내 신었다. 검은 하이힐은 섬뜩하니 광택이 돌았다. 그는 하이힐 끝을 바닥에 톡톡 두드리더니, 날 보며 씨익 웃었다. 아직 안 길들여져서 발이 아파.
그래서 두고 간 거야? 내가 물었다. 응? 그가 되물었다. 그 하이힐 말야. 우리 집에 두고 갔잖아. 아아. 타지마의 입이 벌어졌다. 그랬지. 발이 아파서, 슬리퍼로 바꿔 신고 갔어. 그 외에 별다른 이유가 있겠어? 그렇게 말하며 그는, 박꽃처럼 환하게 웃었다.
현관에서 타지마의 하이힐을 본 미와코는 크게 화를 냈다. 그녀는 저 구두가 누구 꺼냐고 물었다. 나는 그녀에게 아무런 변명도 하지 못했다. 미와코는 내 뺨을 때리고는 돌아가 버렸다. 오늘 아침에 있었던 일이었다.
타지마는 스트립 클럽과 가깝다는 이유로 자주 우리집에 묵고 가곤 했다. 그럴 때마다 으레 선물이랍시고 비싼 양주나 와인을 가져오곤 했다. 술에 취해 기분이 좋아지면, 이따금 타지마는 내게 키스를 했다. 타지마와 하는 키스는 고양이가 치는 장난처럼 재미있었고, 나쁘지 않았다. 그가 단 한 번도 키스 다음 단계로 넘어가려고 하지 않았기에, 나는 더욱 안심하고 타지마와 키스할 수 있었다.
미와코가 오기 전날 밤에도 그가 놀러와 있었다. 나는 타지마에게 내일 여자친구가 올 거라고 말했다. 그러니까 아침 일찍 돌아가 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알았다고 했다. 우리는 양주 한 병을 그 자리에서 싹 비우고 잠에 들었다. 타지마는 내가 부탁한 대로 아침 일찍 집을 나갔다. 검은 하이힐을 남긴 채.
그는 케비닛에서 야구 점퍼를 꺼내 입었다. 오늘 자기 타임은 전부 끝났다며, 함께 저녁을 먹자고 했다. 내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그는 내 손목을 잡아끌었다. 우리는 클럽 건물 뒷문을 통해 바깥으로 나왔다. 어느새 밤이 깊어 있었다. 타지마는 조금 절뚝거리며 걸었다. 발이 아프면 그냥 슬리퍼 신지 그래? 내가 말했다. 그는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 길들이는 거 좋아하니까. 네온등이 휘황하게 번쩍거리는, 만화경의 거리를 향해 우리는 걸었다.
* PSYCHO-PASS AU입니다.
읽으시는 데 불편하지는 않으시겠지만 궁금하신 분은 http://yeonyou.egloos.com/에서 시리즈의 앞부분과 뒷부분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 타지하나, 미하베, 하마이즈
<발목 콜렉터 사건>
연유
“제가 이렇게 여러분들을 모이게 한 것은 다름이 아니라, 제가 좀 시급히 수사하고 싶은 사건을 가지고 왔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건들이 얼마나 급한지, 여러분들이 이미 얼마나 많은 일들을 하고 계신지 저도 잘 알고 있지만, 사건이 워낙 중대 사항이고 피해자들이 속출하고 있어 이 사건을 최우선으로 하고 싶습니다. 지금부터 사건을 설명 드려도 되겠습니까?”
사실 국장은 부하 직원인 우리들에게 이렇게 물어볼 필요도 없다. 그저 명령하면 그만인 것이다. 죽음을 불사한다면 모를까 국장의 명령을 어길 수 있는 감시관과 집행관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하 직원들을 존중하는 그의 말씨에 나는 조금 감화되어 가장 먼저 입을 땠다.
“예. 브리핑 잘 부탁드립니다.”
혹시나 싶어 아베 쪽을 확인하자 아베가 고개를 끄덕인다. 보통 수사를 이끌어가는 것은 집행관 최고참인 나와 아베다. 감시관들 또한 수사에 대한 이해가 높고, 집행관들의 말과 행동에 책임을 지는 역할을 하지만 수사에 집행관들만큼 개입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상 나와 아베의 오케이 사인이 떨어지면 그 케이스에 대한 수사는 최우선적으로 진행된다.
“그럼 바로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방금 모든 분께 사건 파일을 전송해드렸습니다. 일단 모두 지금 파일을 간단하게 확인해주십시오.”
“《발목 콜렉터》? 진짜 발목을 잘라가는 건 아니겠죠?”
회의실 뒤편에서 시마자키 씨가 제법 큰 소리로 말했다. 하마다 국장은 시마자키 씨가 갑자기 끼어들었음에도 눈살 한 번 찌푸리지 않고 대답했다.
“범인은 정말 피해자들의 발목을 자릅니다.”
조금은 소란스럽던 회의실이 순식간에 조용해지며 감시관이고 집행관이고 할 거 없이 국장이 보낸 파일을 진지한 표정으로 읽기 시작했다. 누구보다 빨리 파일을 확인한 아베가 국장에게 질문했다.
“어째서 이 정도의 흉악 사건이 처음부터 공안국에 배속되지 않은 거죠?”
“윗분들이 사정이 있으셔서 그렇지요.”
하마다 국장은 아베에게도 방글방글 웃으며 대답했다. 대답의 내용은 듣는 사람의 표정을 굳어버리게 만들 정도로 끔찍했지만 말이다. 나도 이제는 하마다 국장이 능글거리며 웃는 것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회의실에 있는 그 누구도 그렇다면 왜 이제 와서 이 사건이 공안국에게 배속되었냐는 어리석은 질문은 하지 않았다. 어차피 하마다 국장은 아무것도 대답해주지 않을 것이다. 아베는 국장에게 아무것도 따지지 않은 채 바로 수사에 도움이 되는 생산적인 대화로 노선을 틀었다.
“피해자들은 전부 20대 남성들. 사체는 지금까지 여덟 구가 발견 되었고, 모두 양 발목이 절단된 상태라고 기입되어 있군요. 최근에 썰리다 만 오른쪽 발목이 아슬아슬하게 붙어 있는 시체가 하나 더 발견되어 있고, 특이 사항은....... 정말입니까, 이거?”
“수사 보고서에 장난을 칠 리가 없잖아요? 그래서 더 이상한 사건이기도 하구요.”
나도 파일의 가장 말미에 위치해 있던 특이 사항을 살펴봤다. 과연, 이건 천하의 아베도 기함 할만하다. 마지막으로 발견된 시신의 오른쪽 발에, 검은 하이힐이 신겨 있었던 것이다. 말랐지만 단단해 보이는 뼈가 튀어나온 남성의 발목 밑으로 애나멜 구두에 섬뜩한 기분마저 들었다. 아마 범인은....... 완전히 맛이 간 놈임에 분명하다. 여기 있는 집행관들 저리가라 할 정도로 높은 사이코패스 수치를 가지고 있을 거다.
“아홉 명이나 죽였으면 사이코패스 수치가 장난 아니게 올랐을 텐데, 아직까지 검사에 걸리지 않고 있단 말이지.......”
시마자키 씨가 골치 아프다는 표정을 짓는다. 검사에 걸리지 않는 지능범인데, 이 정도로 완전히 맛이 간 녀석이라니. 하마다 국장 말대로 가장 급하게 진행해야 하는 수사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가지고 있는 정보라고는 국장이 방금 넘겨준 파일이 전부다. 일단 이 회의에서 어디부터 수사를 해나갈지 대략적인 틀부터 잡고.......
“그래서 여기서 제가 제안 하나를 드리려고 합니다.”
모두가 한숨을 쉬다가 말고 하마다 국장에게 시선이 쏠린다. 제안?
“여기에 오기 직전에 정말 운이 좋게도 귀신같은 실력을 가진 분석관님을 만나서 SNS에서 수상한 녀석들을 한 무리 찾았단 말이죠. 모두 화면을 봐 주세요.”
국장 옆에서 조용히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시노오카 분석관이 종종거리며 화면을 세팅했다. 화면에 비춰진 건 팔로워가 100명 남짓 되는 트위터 계정이었다. 계정 이름은 ‘유리 구두’, 그리고 시노오카가 추려서 보여주는 중요 트윗들은 형사들을 모두 뒤로 넘어가게 할 만한 내용들이었다.
이 계정을 구독하는 사람들은 모두 남성들, 진성 게이에, 여장을 즐기는 사람들이었다. 그 중에서도 이들의 관심사는 단연 하이힐이었다. 이 사람들은 자주 남성 발 치수에 맞는 하이힐을 어디서 맞췄는지에 대한 정보를 서로 나누는 것 같았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그저 정보를 교환하는데서 그치지 않고, 정기적으로 비밀스러운 파티를 개최해 직접 만났다. 다른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새 하이힐을 신고, 춤을 추고, 자신의 취향인 파트너를 물색하기도 했다. 물론 이 모든 일들은 현재 진행형이다.
“우와, 엄청 의심스러워. 아니, 난 여기에 범인이 있을 거라고 백 퍼센트 확신해. 내 지금까지의 집행관 경력을 걸어도 좋아.”
거의 허언을 하지 않는 1계의 타카세 씨가 중얼거렸다. 나도 타카세 씨에게 동의했다. 이런 집단이라면 범인이 환장하고 달려들어서 먹잇감을 물색할 것 같다. 이 정도면 수사의 범위를 잡고 말고 할 것도 없다. SNS 모임인 게 조금 걸리긴 하지만, 시노오카가 아이피를 추적하면 간단할 지도 모른다. 100명 가까이 되긴 하지만 형사과 전원이 나선다면 전부 확인해 보는데 하루도 걸리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말인데요, 이 계정에서 정기적으로 개최하는 파티에 수사관 두 분을 몰래 잠입시키면 좋지 않을까 싶어요.”
국장의 천진난만한 발언에 진중한 분위기였던 회의실이 바로 시장 바닥처럼 들끓기 시작했다. 나도 어이가 없어서 입을 조금 벌리고 국장을 그저 바라만 보고 있는 상태였다. 아니, 농담인가? 그냥 범인들 주거지를 모두 확인하면 될 일을 왜 그렇게,
“다나카 사 대주주들 사건, 아주 중요하다죠? 상부에서도 크게 신경을 쓰고 있는 사건이에요. 아무래도 그 사건도 소홀히 할 수 없으니 형사과 전원이 한꺼번에 들이닥쳐서 범인들을 일제히 확인하는 방법이 불가능할 것 같아서 말이죠.”
부임한지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은 사람인데, 이미 공안에서 맡고 있는 사건들을 손바닥 보듯이 훤히 보고 있는 것만 같은 말투였다. 국장의 말도 일리는 있다. 아무리 이미 대주주들 세 명을 구속하고 1차 심문까지 끝낸 상태라지만 남은 세 명의 행적은 아직 실마리조차 찾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돈도 있고 빽도 있는 족속들이니 정말로 공안의 손이 닿지 않는 곳으로 내빼기 전에 수사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나는 다나카 사 대주주들 사건 당시에 같이 페어를 이뤘던 타지마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타지마도 내 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심장이 쿵하고 떨어졌다. 나는 언제나 그랬듯이 먼저 시선을 돌리지 못했다. 타지마의 눈은 항상 나를 옭아매는 것만 같다. 그 시선에 취해 멍하게 있었더니 타지마가 갑자기 씩하고 내게 웃어준다. 나는 타지마의 웃음에 정신을 못 차리고 흐물흐물한 상태가 되었다. 그런 내게 한 번 더 미소를 지어준 타지마는 바로 시선을 국장에게로 돌리고 손을 들고 발언했다. 나는 시선과 웃음 투 콤보의 여운에 가만히 젖어있었다.
“국장님! 사건일지를 살펴보셨으면 아시겠지만 엄밀히 말하면 다나카 사 대주주들에게 납치당했던 하나이와 아베도 피해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피해자 인권 보호 차원에서 다나카 사 사건이 아닌 발목 콜렉터 사건을 맡기는 게 낫다고 생각합니다!”
타지마의 그 발언은 내가 푹 잠겨있었던 여운을 산산조각 낼 정도의 파괴력을 갖추고 있었다. 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타지마와 국장에게 소리쳤다.
“저 같은 집행관한테 무슨 놈의 인권입니까?!!!”
“그리고 사로잡은 대주주들 세 명을 1차 심문한 게 전데, 제가 사건에서 빠지는 건 말도 안 됩니다.”
옆에서 아베도 거든다. 다나카 사 사건에서 잠시 손을 떼는 게 문제가 아니라, 여장을 하고 여장을 한 남자들 사이에서 희희낙락거려야 한다는 게 문제다. 타지마가 어떻게 해서든지 나를 다나카 사 사건에서 떼어놓고 싶어 하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런 수까지 둘 줄은 몰랐다.
“하나이 군이라면 믿고 맡길 수 있을 것 같아서 좋을 것 같네요. 아베 군과도 좋은 페어라고 들었어요.”
“하지만 국장님!”
“모두도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은데요?”
“대체 무슨.......”
주위를 둘러보자 회의실에는 이미 나와 아베, 미하시, 그리고 국장님만이 남아 있는 상태였다. 국장님은 아까 타지마가 발언하자마자 모두 작게 박수를 치며 맘대로 나갔다고 부연 설명을 했다. 아베에게 왜 다른 형사들을 말리지 않았냐고 따지자 아베는 한쪽 귀를 후비며 귀찮아서 그냥 가만히 있었다고 대답했다. 발목 콜렉터 사건을 최대한 빨리 처리하고 바로 다나카 사 사건으로 돌아오면 되지 않느냐고 태평스럽게 덧붙이기도 했다. 아베는 사건에 도움이 되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주의다. 여장을 하든, 하이힐을 신든, 그런 자신의 모습을 훑어 내리는 사람들 사이로 기어들어가든 범인만 잡을 수 있으면 아무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거겠지. 나는 세상에 믿을 사람 하나 없다고 속으로 한탄하며 마지막으로 회의실을 나섰다. 계정을 잘 살펴보고 그들의 취향에 완전히 부합하는 코디를 해보라며 국장은 내 어깨를 두드리고 먼저 나갔다. 아베는 바로 계정을 샅샅이 뒤져주겠다며 의욕을 불태우며 바로 사무실로 향했고, 그 뒤를 미하시가 졸졸 따라나섰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복도에 가만히 서있는데 시노오카가 내게 손을 흔들며 저 쪽에서 뛰어오고 있었다. 양 팔에는 알록달록한 색의 실크 천과 가죽들이 들린 체였다. 나는 내게 달려오는 시노오카 양을 발견한 뒤 저항하는 것을 완전히 포기하게 되었다. 엄청난 자연재해 뒤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막연한 생각을 하는 수재민 같은 심정이 되었다.
* * *
아베 군은 먼발치서 하나이 군과 시노오카 양이 이야기하는 것을 쳐다보더니 몸을 휙 돌려 복도를 빠른 걸음으로 가로지르기 시작했다. 아베 군의 뒤를 따르던 나는 두 번 정도 스텝이 꼬여 넘어질 뻔했다. 아베 군은 내가 넘어지거나 말거나 걷는 속도를 늦춰주지는 않았지만 간간이 뒤를 돌아 내가 따라오고 있는지를 확인했다. 예전에 눈길조차 주지 않았던 것을 생각하면 장족의 발전이라고 할 수 있다.
아베 군이 향한 곳은 2계 사무실이었다. 다나카 사 사건 이후 2계 형사과와 우리 3계 형사과는 긴밀한 협력 관계를 갖게 되었다. 그러니 아베 군이 2계 사무실에 들어가는 것이 이상하지는 않다. 그렇지만, 어, 아베 군, 이제 다나카 사 사건에서 손 떼는데, 왜 2계에.......?
“이즈미.”
아베 군이 엄청난 기세로 타자를 치고 있는 이즈미 군을 불렀다. 휙 하고 이쪽을 바라본 이즈미 군은 그야말로 야차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오늘은 이즈미 군, 하루 종일 기분이 나빠보였다. 하지만 아베 군은 이즈미 군이 그러거나 말거나 성큼성큼 이즈미 군의 앞까지 다가가 다나카 사 사건을 이즈미 군에게 인계해주기 시작했다. 이즈미 군도 적당히 표정을 누그러뜨리고 아베 군이 하는 말에 집중하는 것 같았다. 아베 군은 심문의 방향을 말해주고, 미리 준비한 질문 목록까지 넘겼다. 이즈미 군도 공안국에 들어온 지 오래되지 않아서 아마 이즈미 군이 주도적으로 심문을 이끌 수는 없겠지만, 사카에구치 씨가 주도하는 심문을 옆에서 잘 서포트는 할 수 있을 것이다.
인계가 얼추 마무리되자, 아베 군은 주위를 돌아보더니 의자를 하나 끌어와 이즈미 군에게 가깝게 붙어 앉았다. 나는 그게 마음에 영 들지 않아 바로 아베 군의 의자를 뒤로 살짝 빼내려고 했지만, 아베 군이 무섭게 째려봐서 결국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이즈미, 홀로도 좀 만들어줬으면 좋겠는데.”
“홀로그램? 잠입할 때 쓸 거?”
“말이 빨라서 좋네. 나도 만들 줄이야 알지만, 너랑 비교하면 한참 떨어지니까.”
이즈미 군은 살짝 고민하는 것 같았다. 이즈미 군은 분석관인 시노오카 양과 자주 페어로 일할 정도로 데이터 분석에 일가견이 있었다. 홀로그램 전문가기도 했다. 하지만 홀로그램을 잘 아는 사람이라고 해서, 홀로그램을 남들보다 적은 노력으로 만들 수 있다는 건 아니다. 아베 군이 원하는 수준 높은 홀로를 만들려면 아무리 이즈미 군이라고 해도 철야를 해야 할 것이다. 이즈미 군의 침묵이 길어지자 아베 군은 한숨을 푹 내쉬더니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하마다 요시로.”
이즈미 군은 아베 군이 그렇게 중얼거리자마자 펄쩍 뛸 듯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베 군을 바라보는 두 눈에는 경악이 서려있다.
“아, 아베, 너!”
“아니, 모르는 놈들이 멍청한 거지. 너 국장 오자마자 살짝 맛탱이 간 것처럼 보이거든? 아까는 복도에서 괴성을 지르지 않나, 회의에 불참하지를 않나. 왜, 니가 감시관들을 싫어한다고 맨날 앵무새처럼 말하고 다니는 게 그 놈 때문이기라도 하냐?”
“.......”
아베 군의 말은 질문이라기보다는 확인 사살과 같이 들렸다. 이즈미 군은 아베 군을 째려보다가 결국은 포기한다는 듯이 다시 제자리에 앉았다. 책상 위에 너부러져 있던 메모지를 앞으로 끌어당기고 이것저것 계산해보기 시작한다. 아베 군이 흡족하다는 듯이 미소를 짓고 있는 것으로 보아 홀로그램에 대한 계산인가보다. 이즈미 군은 양 팔에 펜을 쥐고 끊임없이 계산식을 써내려가면서 말했다.
“아베, 그 놈 좀 안 보게 해주라.”
“지금 일개 집행관한테 국장 좀 안 보게 해주면 안 되냐고 부탁하는 거냐?”
“니가 무슨 일개 집행관이야. 감시관들도 너한테는 무조건 접고 들어가는데........ 나 그 새끼 진짜 싫어한단 말이야.”
“글쎄다. 그 쪽에서도 너를 엄청 싫어해서 너를 찾지 않으면 당연히 국장을 안 보게 해줄 수도 있다만, 아까 회의실에서 보니 너를 엄청나게 찾는 것 같던데. 명단을 몇 번씩이나 확인했고, 그런데도 왜 니가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냐고 우리들한테 묻지는 않고. 니가 왜 안 왔는지 짐작이 되니까 묻지 않는 거 아닌가? 그 쪽은 상사야. 그냥 상사도 아니고, 우리 같은 집행관들한테는 하늘같은 상사지. 포기해.”
이즈미 군의 어깨가 눈에 띄게 축 처진다. 왠지 계산 속도까지 느려진 것 같은 착각이 든다. 그러다가 갑자기 이즈미 군의 어깨가 확 하고 위로 올라온다. 펜에도 점점 힘을 담아 꾹꾹 눌러 쓰기 시작한다. 나는 이즈미 군이 다시 분노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재빨리 아베 군의 의자를 뒤로 뺀 뒤 아베 군을 품에 안고 막무가내로 2계 사무실을 박차고 나왔다. 아베 군은 영문을 몰라 반항하려고 했지만 내가 사무실 문을 닫자마자 들리는 이즈미 군의 괴성과 유리창이 깨지는 소리에 반항을 멈췄다.
이즈미 군은 우리 공안국에서 가장 상식인이라고도 할 수 있다. 감시관들보다도 이성적이면서도 항상 피해자들을 위해서 움직이는 형사의 귀감이라고도 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런 이즈미 군이 감시관이 아니라 집행관인 이유는 바로 저 성질머리 때문이라고 아베 군이 말했다. 가끔씩 분노가 조절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이즈미 군은 그럴 때마다 소리를 지르고, 주변의 물건들을 다 깨부순다. 그래도 그런 이즈미 군을 진정시키는 사람은 적어도 공안국 내에는 아무도 없다. 이즈미 군이 기물은 파손하지만 절대 사람을 다치게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게 이즈미 군이 격리실에 갇히는 게 아니라 형사로서의 능력을 인정받고 공안국에서 일할 수 있는 이유라고 한다. 하지만 이즈미 군의 화에 휘말려 물건들에 맞아 다치는 건 가능하니까....... 그래서 이즈미 군이 화를 낼 때 대부분의 공안국 사람들은 멀리 피한다. 워낙 집행관에게도 많은 금전이 지원되기 때문에 이즈미 군이 항상 자신이 부순 물건들을 변상해도 파산하지는 않는다. 그게 아니었다면 이즈미 군은 진작 장기라도 팔아야 했을 것이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안이 조용해진 것이 느껴졌다. 그 때까지 내 품 안에 가만히 안겨 있던 아베 군이 꼬물거리며 내 팔을 풀어냈다. 아베 군은 그대로 3계 사무실로 향했다. 내가 왜 다시 2계 사무실로 가지 않느냐고 했더니 이즈미 군에게 시켜야 할 일은 다 시켰기 때문에 볼 일이 없다고 했다. 아베 군은 이즈미 군이 화난 것과는 반대로 이즈미 군에게 시켜야 하는 일들을 다 시킬 수 있어서 굉장히 즐거워보였다. 나는 아베 군이 즐겁다면 그걸로 됐다고 생각하며 아베 군을 따라 사무실로 들어갔다.
* * *
시노오카는 바쁘게 분석실 구석에 위치한 캐비닛들을 전부 열어보며 안에 있는 옷가지들을 전부 꺼내 늘어놓았다. 평소 같았으면 그런 시노오카를 도왔겠지만 이번에는 시노오카가 가장 높이 있는 서랍을 못 열어서 낑낑대도 도와주지 않았다. 시노오카도 내 쪽은 쳐다보지도 않고 의자 하나를 가지고 와 번쩍거리는 큐빅이 잔뜩 박힌 보라색 벨벳 하이힐을 꺼냈다. 우와, 큐빅 양 옆에 남색 깃털까지 몇 개 꼽혀 있다. 시노오카는 나를 무슨 중세 시대 백작 부인처럼 만들 생각인가보다. 드디어 옷들을 꺼내는 작업이 끝났는지 시노오카가 나를 부담스러운 눈망울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나는 일부러 아무 말도 꺼내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시노오카의 오른 손에는 줄자가 들려있었다. 이대로 치수를 재지 못하게 하고 한동안 도망 다니면 이 끔찍한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진심으로 시노오카에게 덤벼들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소파에서 일어나 농구 일대일을 할 때처럼 중심을 낮추었다. 그 때까지 부드럽게 나를 바라보고 있던 시노오카의 눈빛이 확 변하면서 시노오카도 내게 덤벼들 듯 따라 자세를 낮춘다. 시노오카는 분석관이지만 사람을 제압하는 데는 도가 터있다. 사람 몸의 약점이라는 약점은 전부 파악하고 있는 스페셜리스트인 것이다. 분석실의 공기가 점점 긴장감으로 가득해져갔다. 그 때 갑자기 시노오카가 방어 자세를 풀고 평소의 부드러운 분위기로 돌아갔다. 나는 의아해하면서도 바로 바깥으로 도망가기 위해 발걸음을 떼려고 했다. 그러자 갑자기 뒤 쪽에서 누군가가 굉장한 악력으로 한 쪽 손으로는 내 상반신을 붙잡아 누르고 다른 손으로는 허리로부터 다리 사이를 훑어 내리며 하반신까지 눌러 내렸다. 너무 갑자기 일어난 일이라 나는 영문도 모른 채 소파에 얌전히 내려앉을 수밖에 없었다. 뒤를 돌아보자 타지마가 천진난만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내가 사랑하는 미소도 함께였지만 이번만큼은 너무 화가 나서 큰 소리로 짜증을 냈다.
“타지마!!!!”
“으앗, 깜짝이야. 왜 소리를 지르고 그래, 하나이.”
타지마는 아무 잘못도 없는 사람처럼 되래 내게 툴툴거렸다. 나는 제대로 항변하기 위해 몸을 틀고 타지마를 마주 보려고 했지만 아직도 나를 누르고 있는 타지마의 손힘이 너무 세서 몸은커녕 타지마의 얼굴을 제대로 보는 것도 힘들었다. 나는 최대한 고개를 뻣뻣하게 치대며 타지마에게 계속 소리를 질렀다.
“너 대체 이게 무슨 짓이야?!”
“응? 뭐가?”
“일단! 왜 나를 누르고 있는 거야!”
“그거야 하나이가 도망가려고 하니까.”
“내가 누구 때문에 이 상황에 처했다고 생각하는 거냐.......”
“응? 발목 콜렉터 때문이지?”
“아니, 어떻게 생각해도 너 때문이지.”
타지마와 기운 빠지는 대화를 나누고 있자 그새 시노오카가 가까이 다가와 기어이 치수를 재기 시작했다. 타지마와 죽이 척척 맞는다. 타지마가 내 허벅지를 살짝 들어주면 시노오카가 밑으로 줄자를 끼워 넣는 식이다.
시노오카는 어느새 단단하게 매여 있는 내 구두끈을 풀고 있었다. 내가 깜짝 놀라 제지하려고 하자 다시 타지마가 내 몸을 억누르기 시작한다.
“가만히 좀 있어, 하나이!”
“아니, 신발 같은 것 정도는 내가 벗어도 돼! 내가 알아서 신을 테니까!”
“뭐야. 시노오카라서 부끄러운 거야? 그럼 내가 벗겨줄까?”
“뭐?!!”
나는 순간적으로 바닥에 무릎을 꿇고 내 신발을 벗겨주는 타지마를 상상했다. 세상에, 절대 안 된다. 나는 시노오카를 제지하는 것을 포기하고 최대한 가만히 앉아 있으려 노력했다. 타지마가 내 신발을 벗기는 것만큼은 죽었다 깨나도 피하고 싶다. 이제 타지마의 관심은 나에게서 시노오카가 잔뜩 꺼내놓은 옷감과 스케치북에 옮겨갔다. 타지마는 옷감들을 뒤적거리다가 새까만 레이스를 한 장 들고 내 머리에 이리저리 대보았다. 스케치북에서는 메이드들이나 입을 법한 엄청난 드레스 디자인을 한 장 찢어왔다. 그것만으로도 기절할 것 같은 기분인데 시노오카는 그런 타지마에게 한 술 더 떠서 가발도 골라오라고 한다. 나는 그렇게 반나절동안 타지마가 내 발등에 돋은 핏줄을 만지작거리든 시노오카가 머리 장식을 만든다며 재봉틀을 꺼내든 간에 내 몸을 두 악마에게 맡기고 그저 가만히 인형처럼 앉아있었다.
* * *
아베 군은 한동안 굉장히 기분이 좋아보였다. 겨우 정신을 수습한 이즈미 군이 말도 안 되는 작업 속도로 아베 군의 홀로를 만들어 오기 직전까지의 얘기지만 말이다. 이즈미 군이 실실 웃으며 홀로를 가동하자 주변에 있던 형사들은 모두 포복절도했다. 나도 순간적으로 어안이 벙벙해있었다. 이즈미 군의 홀로는 훌륭했다. 아예 홀로가 아닌 실제 옷 같을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이즈미 군이 만든 홀로 옷은 몸에 바짝 붙는 파티드레스였다. 그것도 넥 부분과 등짝이 시원하게 파여 있고 오른쪽 옆구리까지 다 뜯어져 있는 드레스였다. 드레스는 노출이 심한 만큼 입은 사람이 남자라는 걸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그런데도 나는 드레스 홀로를 걸친 아베를 그저 멍하게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나는 용기를 내어 아베 군에게 다가가 조심스럽게 귓가를 쓰다듬었다. 역시 홀로여서 촉감을 느낄 수는 없었지만, 이즈미 군이 엄청나게 공을 들여 만들어서 그런지 아베 군의 귓가에 달려있던 귀걸이가 살짝 흔들려보였다. 내가 귀를 건드리자 아베 군이 바로 내 손을 치워냈다. 그러더니 끼긱 거리면서 이즈미 군 쪽으로 몸을 돌린다. 아베 군이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풍기자 마구 웃어대던 다른 형사들이 모두 멈췄다. 아베 군은 이즈미 군의 어깨에 손을 올리더니 음산하게 말했다.
“야.”
“뭐, 뭐.”
“너도 입어.”
“.......뭐?”
“너도 입으라고. 잠입할 때 나랑, 하나이랑, 너도 가자고.”
아베 군치고는 굉장히 감정적이고 즉흥적인 결정이었다. 아베 군은 그렇게 이즈미 군에게 폭탄선언을 날리고는 나가버렸다. 홀로가 얼마나 잘 만들어졌는지, 아베 군의 발에 감싸져 있는 검정 하이힐 굽이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가 리얼하게 울려 퍼졌다. 아베 군은 기어이 사무실 문을 열면서 한 마디를 더 던졌다.
“이 건 짬밥 더 먹은 선배로서 하는 명령이다. 홀로 하나 더 준비해. 내가 입은 것처럼 화끈한 걸로.”
이즈미 군을 한 방 먹이고 아베 군이 나가자마자 시마자키 집행관이 바로 입을 열었다.
“우와, 엄청 당황하긴 했나보다. 홀로도 안 풀고 그냥 나갔어.”
“아베 성격 알면서 이즈미 너는 왜 홀로를 그렇게, 그, 사실적으로 만든 거야?”
타카세 감시관이 이즈미 군에게 물었다. 이즈미 군은 바로 시니컬하게 “내가 또 엿을 먹는 한이 있어도 아베한테 엿을 먹여야하니까요.”라고 쏘아붙였다. 그러자 타카세 감시관은 피식 웃더니 이즈미 군을 놀리기 시작했다.
“아베야 원래 잠입해야 했으니까 그렇다고 치고, 너는 또 철야를 해서 본인이 입기도 싫은 홀로를 만들고 그걸 입고 변태 소굴로 잠입해야 하는데도?”
“하....... 몰라, 몰라요. 됐으니까 이제 다들 자기 자리로 돌아가세요.”
나는 다른 형사들과 이즈미 군이 잡담을 하는 걸 조금 더 지켜보다 바로 복도로 뛰어나와 아베를 찾았다. 계단을 올라 옥상으로 나가자 담배를 피고 있는 아베 군이 보였다. 몸에 달라붙는 옷을 한번 의식하기 시작하니까 너무 신경이 쓰여서 다가가기 힘들었다. 멀리서 우물쭈물 거리고 있자 아베 군이 잔뜩 가라앉은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미하시. 이리로 와.”
“응응....”
“대답은 한 번만.”
“응!”
쪼르르 아베 군에게 다가가자 아베 군이 피곤한 얼굴로 내게도 담배를 권했다. 나는 담배 한 개피를 입에 물고 아베 군이 불을 붙여줄 때까지 기다렸다. 아베 군은 아직도 라이터를 안 가지고 다니느냐고 짜증을 내면서도 항상 불을 붙여준다. 나는 아베 군이 불을 붙인 뒤 내게서 떨어지려고 하자 바로 내 양복 상의를 벗어서 걸쳐주었다.
“뭐야?”
“아베 군, 그, 어깨가, 춥, 춥......”
“바보 아냐? 이 거 홀로야. 나도 마의 다 챙겨 입었어.”
“응, 그렇긴 한데, 그게,.......”
“됐어. 그냥 입고 있을게.”
아베 군이 내 양복 상의를 걸치고 있는 걸 보자 왠지 뿌듯해진다. 실실거리면서 웃자 아베 군이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보더니 바로 고개를 돌려버린다. 아베 군은 내 쪽은 쳐다보지 않으면서 구시렁거리기 시작했다.
“이즈미 이 녀석도 그렇게 안 봤는데 순 변태구만. 그냥 적당히 만들면 될 거 아니야. 다른 평범한 옷도 많잖아. 뭐, 그냥 정장이라던가.”
“그, 그렇지만, 아베, 아베 군, 잘, 어울려!”
“아, 그래. 그것 참 고맙네.”
아베 군이 심드렁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나는 왠지 그런 아베 군의 반응이 당황스러워서 큰 소리로 다시 말했다.
“저, 정말! 정말 어울려!”
아베 군은 갑자기 큰 소리를 내는 나를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보더니 피식하고 웃는다.
“그래. 진짜 고마워.”
우리는 그 뒤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담배만 피웠다. 아베 군은 담뱃불을 끄면서 홀로나 빨리 풀어야겠다고 말했다. 아베 군이 담배를 다 피우는 동안 곁눈질로 실컷 아베 군을 구경한 나는 아베 군이 잠입할 때 왁스로 머리를 고정시켜 줘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사무실로 향하는 아베 군의 뒤를 따랐다. 나는 아베 군의 하이힐이 또각또각 거리는 소리에 맞춰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즐겁게 아베 군을 따라 걸었다. 아베 군이 위험한 곳에 잠입하는 건 싫지만 아베 군의 저 드레스 차림은 혁명적이다. 둘이 있을 때 한 번 더 입어달라고 하면 화를 낼까? 나는 아직도 이즈미 군을 향한 화가 덜 풀려서 조금은 씩씩대고 있는 아베 군을 뒤에서 바라보며 망상을 계속 전개시켜 나가고 있었다.
* * *
대망의 그 날이 왔다. 나는 침대에서 아예 일어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침대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잠입 수사를 할 필요도 없고, 잠입 수사를 하지 않아도 되면 그 옷들을 입지 않아도 되고....... 다 부질없는 생각이다. 어제 시노오카는 밤을 새서 내 가발 위에 씌울 머리 장식을 만든다고 했다. 나머지 옷이나 장식은 분석실에서 입고 잠입 수사를 가면 되지만 하이힐만큼은 그냥 신고 오라는 게 시노오카의 명령이었다. 다른 건 몰라도 하이힐을 신고 뛰거나 범인을 잡아야 할지도 모르니 미리 익숙해져야 해서다. 나는 덕분에 요 일주일 간 하루 종일 하이힐만 신고 생활해야 했다. 이틀 째 되던 날에 결국 발에 물집이 잡혔고, 물집이 터져도 계속 신고 다녀야 한다는 말에 그냥 참고 계속 신었더니 요즘은 그냥저냥 신고 다닐만해졌다. 처음에는 내 보라색 하이힐을 보고 미친 듯이 웃던 2계 형사과 사람들도 익숙해져서 전혀 웃지 않게 되었다. 1계 형사과 사람들도 처음에야 나만 보면 손가락질을 하며 섹시하다는 둥 웃기지도 않는 헛소리를 하며 날 놀리곤 했지만 이제는 귀찮아졌는지 그러지 않는다. 가끔씩 비틀거릴 때만 부축해주며 이죽거릴 뿐이다.
2계 사무실이 아니라 분석실로 출근하자 아베가 웃기지도 않는 꼴을 하고 소파에 앉아있었다. 가슴팍에는 끈만 두 갈래로 교차되게 묶어놓고 훤히 드러내어 놓았는데 등에는 그마저도 없었다. 귀에는 심플하지만 큼지막한 귀걸이가 달랑거리고 목에도 큐빅인지 진짜 다이아몬드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로 번쩍거리는 커다란 목걸이가 걸려있었다. 아베는 문제의 변태 집단 sns를 대형 스크린에 띄워놓고 다시 훑어보는 중이었다. 미하시가 그런 아베에게 달라붙어 머리를 매만져주고 있는 중이었다. 아베는 나와 달리 가발을 쓰지 않으려는 눈치였다. 미하시가 아베의 앞머리를 전부 뒤로 넘겨주고 있었는데 의외로 그런 머리스타일이 드레스와 잘 어울리는 것 같았다. 남자가 드레스를 입은 시점에서 이미 잘 어울리고 뭐고 그런 건 없지만 말이다.
나는 아베의 앞에 놓여있던 소파를 끌어다 앉았다. 기다렸다는 듯이 시노오카가 튀어나와 내게 옷을 넘겨주었다. 매번 생각했던 거지만 입는 것도 벗는 것도 어지간히 귀찮은 옷이다. 레이스는 너풀거리고 치마는 너무 길어서 거추장스럽다. 내가 옷매무새를 가다듬자 시선이 확 집중된다. 내가 들어와도 소닭 보듯 쳐다보던 아베도 스크린에서 시선을 떼고 나를 빤히 바라본다. 입가 한 쪽을 끌어올리면서 “최악이네. 끔찍해.”라며 악평을 한다. 나도 아베를 향해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너처럼 가슴팍 다 헤쳐 놓고 시각 테러는 안하는데?”하고 응수해줬다.
우리가 이상한 신경전을 벌이든 말든 시노오카는 내 머리카락 색깔과 비슷한 회색 롱 가발을 내 머리에 제대로 고정시키려고 끙끙대고 있었다. 가발을 고정시킨 뒤에는 레이스 머리띠를 씌웠다. 나도 이런 차림이라면 잘 알고 있다. 메이드 카페는 수많은 잠재범들이 모인 소굴이기도 해서 자주 수사를 나가 일망타진을 해오곤 한다. 내가 그 종업원들처럼 이런 옷을 입을 거라고는 생각해 본 적도 없었지만 말이다. 정신적으로 지쳐서 더 이상 아베의 말에 응수할 기운도 없었다. 나는 잠입 수사 직전까지 그저 가만히 소파에 앉아있기로 했다. 가서 일만큼은 똑바로 해야 한다. 질이 아주 나쁜 흉악 범죄이니 만큼 제대로 한 번에 범인을 끌어 내와야 한다. 혼자서 속으로 각오를 다지고 있는데 갑자기 분석실 문이 열렸다. 꼴은 우스워도 위험할 지도 모르는 잠입이니만큼 다른 형사들이 배웅을 해주기로 했지만, 아직 그 시간이 되지 않았다. 분석실 안으로 걸어들어오는 건 이즈미였다. 이즈미의 상태는 나와 아베에 비할 바가 못되었다. 이즈미는....... 웨딩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이, 이즈미......?”
“하나이. 거기서 니가 한 마디라도 했다간 진짜 폭발해버릴 것 같으니까 아무 말도 하지마라.”
“그, 그래.......”
나는 대신 설명을 해줄 아베를 쳐다보았다. 아베는 이즈미가 분석실로 들어오자마자 엄청나게 기분이 좋아보였다. 물론 두 명만 들어가기엔 안내 받은 파티장의 규모가 너무 크긴 했지만, 그렇다고 이즈미를 끌고 들어가다니. 순순히 그런 곳에 자원해서 들어갈 이즈미가 아닌 것이다. 그리고 저 웨딩드레스는 대체 뭐란 말인가?
“내가 같이 여장하고 들어가자고 했어. 내 드레스 홀로를 너무 심각하게 잘 만들어주셨더라고. 봐. 하이힐은 신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딱딱하고 굽이 부딪히는 소리까지 나. 대단하지?”
그래서 보복으로 이즈미를 끌어들였다고? 이 쪽 인력이 부족하긴 하지만, 정말 아베는 성격이 나쁘다. 웨딩드레스를 선택한 것도 끔찍하고 말이다. 이즈미가 자리에 앉자마자 다른 형사들이 모두 분석실로 들어왔다. 이즈미는 바로 또 다른 홀로를 가동시켜 얼굴을 가렸다. 무려 면사포의 등장이었다. 자리에 이즈미만 없다는 것을 깨달은 형사들이 면사포를 들추며 마구 놀려대서 면사포는 쓰나마나했지만 말이다. 그 와중에 하마다 국장의 표정이 굉장히 안 좋았다. 자기가 시켜놓고 막상 보니까 너무 흉악한 꼴이라 놀란 것일까?
“국장님?”
내가 조심스럽게 말을 걸자 하마다 국장은 더욱 딱딱하게 표정을 굳히더니 몇 개의 단어를 떠듬떠듬 뱉어냈다.
“이즈미 집행관, 웨딩드레스.......”
“제가 지시했습니다. 잠입 수사를 하는 인원을 결정하는 권한 정도는 제게 위임되어 있거든요. 처음 오셔서 잘 모르셨나봅니다?”
아베가 태연하게 대답하자 국장의 표정은 더 굳어진다. 아무리 아베라지만 오늘따라 너무 무례하게 대답하는 것 같다. 국장이랑 줄다리기라도 할 셈인가?
“파티장이 너무 넓어서 아마 세 명은 들어가야 할 겁니다. 이즈미 군에 대한 서류도 읽어보고 오셨겠지만, 이즈미 군도 공안국에 들어온 지 오래된 베테랑입니다.”
“하, 하지만.”
“왜 그러시죠? 국장........님?”
내가 기껏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어보려고 부연 설명을 했지만 하마다 국장은 이제 눈에 눈물까지 맺히려고 하고 있었다. 방금 내가 한 말 어디에 울만한 요소가 있었단 말인가? 나는 너무 당황해서 아무 말도 잇지 못한 채 국장님이 눈물을 흘리는 것을 그저 바라만 보고 있었다. 그 건 다른 형사들도 마찬가지였다. 그저 아베만이 시시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을 뿐이었다. 아베를 제외한 모두가 당황스러움에 어떤 행동도 취하지 못한 채 안절부절 못하고 있을 때 이즈미가 씩씩하게 일어나 하마다 국장의 코앞까지 걸어갔다. 본인의 홀로도 대강 작업하지는 않았는지 새하얀 하이힐 구두 굽 소리만이 우리들 사이에 울려 퍼졌다.
“야, 찌질이. 쳐 울지마. 민폐야.”
이즈미 군의 아베 못지않은 신랄한 말이 형사들 사이에 더 깊은 정적이 감돌게 했다. 의외로 폭언을 들은 국장은 폭언 따위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이즈미 군에게 대꾸했다.
“하지만! 하지만! 으엉......... 너무 예뻐, 이즈미....... 이러고 변태 소굴에 들어가면 내가 어떻게 살아........”
“뭐래. 너 나 안 보고 일 년 동안 잘만 살았잖아. 나 잠재범들 소굴인 공안국 집행관 숙소에서 일 년 동안 엄청 잘 살았는데.”
“안 돼, 이즈미... 허어엉, 이즈미는 안 된단 말이야.......”
그래요, 국장님. 이즈미는 안 되지만 저랑 아베는 이런 꼴로 범죄자들 소굴에 들어가도 되는 군요....... 아베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지 표정이 썩어있다. 이제 보니 이즈미와 국장 사이에 뭔가 커넥션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다지 이즈미에게는 좋은 기억이 아니었나보다. 이즈미가 새 국장을 보자마자 인상을 엄청나게 찌푸리고 회의에도 참가하지 않은 건 나도 기억하고 있다. 이즈미가 국장을 제대로 대면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하지만 항상 경계선을 아슬아슬하게 유지하는 이즈미의 사이코패스가 국장을 만나자마자 왠지 깨끗해지는 느낌이 든다. 국장에게 계속 욕설을 퍼부으면서도 표정은 점점 부드러워진다. 이제 이즈미는 욕을 하기 보다는 국장에게 타이르기 시작한다. 커플들 사이를 방해하는 기분이 돼서 나를 필두로 다른 형사들은 분석실을 나와 버렸다. 그러든지 말든지 이즈미와 하마다 국장은 자기들의 세계에 빠져있는 것 같았다. 지적이면서도 속이 시커먼 것 같았던 하마다 국장의 말도 안 되는 면모를 본 충격에서 겨우 빠져나온 나와 아베는 일단 다른 형사들에게도 오늘의 작전 브리핑을 했다. 혹시라도 우리가 작전대로 움직이지 않으면 다른 사건이 벌어진 것으로 간주, 다른 형사들이 파티장으로 들어오는 것으로 되어 있다. 저 모양이면 이즈미는 작전에 들어오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게 좋겠지. 나도 앞으로 몇 달 동안 새로 온 국장에게 쪼일 바에야 그냥 아베와 둘이 일을 많이 하는 편이 낫다.
어느새 내 옆에는 타지마가 서있다. 타지마는 가만히 내 손을 마주 잡더니 손을 내 치맛자락 사이로 쏙 숨겨버린다. 나를 이런 꼴로 만든 장본인이지만 귀엽게 장난을 치는 모습에 자꾸 기분이 풀려버린다. 준비 과정에서 탈도 많고, 가서도 엄청나게 위험할 것 같은 생각밖에 들지 않지만 타지마가 손을 잡아 주는 것만으로 이렇게 안심이 되어버린다. 나는 기분 좋은 심장의 두근거림을 느끼며 타지마에게 잘 다녀오겠다고 인사했다. 이제 곧 파티가 열릴 시간이 된다. 나는 잘 걷다가도 비틀거리며 (그 때마다 아베의 부축을 받으며) 파티장으로 향했다. 어떻게든 되겠지-하는 긍정적인 생각만을 하면서 말이다.
타지미하 _ 호련
열정적이고 재빨리 소진되는 생명을 가진 여름이 시작되었다. 긴 낮은 찌는 듯 했지만 불타는 깃발처럼 금방 타올라 버렸고, 짧고 무더운 달밤 다음에는 짧고 무덥고 비 내리는 밤이 이어졌다. 꿈처럼 빠르게, 온갖 형상들로 충만하여, 열병처럼 달아오르다 사그라졌다.
타지마 유이치로에게 여름은 익숙한 열기로 가득 차 있었다. 소년은 태양 볕을 받기 위해 태어나기라도 한 것처럼 여름이 어울렸다. 하루 종일 밖을 뛰어다녀도 더위를 먹는 일도 없었다. 그가 운동을 하게 된 것은 태어나면서 정해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야구를 선택한 것은 소년의 의지였지만 그것이 아니었더라도 소년은 무엇이든 했어야 할 것이었다. 그렇지 않고선 몸 안의 열기에 타올랐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소년들은 열병과 같은 여름의 시작을 맞이하고 있었다. 소년이 그토록 그리워하던 것이었다.
“이야, 이제 또. 여름이네.”
한창의 연습이 끝난 날의 하굣길이었다. 학교 행사를 준비하느라 우연히 하교 시간이 겹치게 된 하마다가 이즈미와 타지마, 미하시와 함께 학교 밖으로 나서고 있엇다. 날은 더웠고, 하마다는 식은 땀을 닦으며 말했다. 여름이라는 말에 반응하듯 타지마가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았다. 두 눈이 반짝 거리고 있었다. 맑은 갈색 눈동자의 열기에 하마다는 뿌듯한 기분을 느꼈다. 그는 소년이 기대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뿐만이 아니라 모두가 기대하는 것이었으니까. 타지마는 커다란 입을 벌려서 긴 환호성을 지르다 대뜸 외쳤다. 여름!
“여름하면, 축제지!”
“나도 응원할, 아니…뭐, 그래?”
하마다는 타지마의 말에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가 예상한 답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여름대회에 대해 말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가 그렇게 예상한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들이 얼마나 열심히 연습해 왔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뭐, 숨 돌릴 틈이 있는 것도 중요하지. 그는 다시 되묻는 대신 스스로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 그러나 의아함을 지울 수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저 녀석이 작년에도 저렇게 들떴던가?’
작년엔 뭘 하는 지도 당일에 알았으면서. 이즈미는 그런 그의 모습을 보고 그가 어떤 생각을 하는 지 아는 것처럼 어깨를 으쓱했다. 두 사람은 2학년이 되면서 타지마와는 다른 반이 되었다. “내버려둬, 저 녀석 반 이번에 카페를 한다는데.” 타지마가 이즈미의 말을 자르고 외쳤다. “내일 일 도와주면 잔뜩 준다고 했어!” 이즈미는 별달리 화내는 기색 없이 덧붙였다.
“그래, 그랬다나봐.”
“케이크! 쿠키! 베이컨 말이!”
“아, 그래?”
어쩐지. 하마다는 타지마의 반응에 하하하고 웃어버렸다. 일 년 동안 보아온 타지마 다운 반응이었기 때문이었다. 타지마는 그가 웃는 것도 신경 쓰지 않고, 상상만으로 행복해졌는지 눈을 반짝이며 군침을 삼켰다.
“미하시도 도와주기로 했어. 같이 서빙할거야. 그치, 미하시.”
“으, 으, 응.”
갑자기 자신에게로 시선이 쏠리자 미하시는 발갛게 뺨을 붉히고 고개를 숙였다.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는 시선이 땅에 꽂혔다. 타지마는 그런 미하시의 어깨에 제 팔을 올렸다. 미하시는 두 손으로 목에 닿은, 그의 팔목을 매달리듯 쥐었다. 까맣게 탄 팔에, 하얀 온기가 닿자 타지마는 찔끔 놀란 표정을 했다. 이즈미는 익숙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하마다는 잠시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헤매다 이즈미와 함께 고개를 돌리곤 뺨을 긁었다. 하, 하, 하. 아까보다는 어색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두 사람은 서로 사귄다고 떠들어대진 않았지만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숨기지도 않았기 때문이었다. 부쩍 붙어 다니는 시간이 늘어났다는 것 말고도 여러 가지 지표가 두 사람 사이의 관계를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었다. 타지마는 더 이상 미하시를 동생 대하듯이 대하지 않았다. 미하시는 그의 팔에 얼굴을 묻듯 고개를 숙였다. 미하시의 코끝까지 그의 안으로 숨었다.
타지마는 자신에게 건네진 유니폼에 의아함을 지우지 않은 표정이었다. 교실 한구석을 대충 까만 천으로 가린 조잡한 탈의실 안이었다. 이게 뭐야? 하고 묻자 그에게 도와줄 것을 부탁했던, 같은 반의 여자 아이가 조금 미안해하는, 다급한 표정으로 애써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뭐긴, 유니폼이지.” “근데 이건 치마잖아?” 하얀 에이프런과 블라우스, 까만 치마 밑엔 더덕더덕 여자 아이들이 박았을 레이스도 달려 있었다. 그렇게 묻는 타지마의 콧잔등이 조금 찡그려졌다. “나는 분명 말해줬다? 네가 다 안 듣고 그러겠다고 하긴 했지만.” 타지마는 '으으음.‘ 하고 목을 울리며 그때를 떠올리려고 했지만, 그리 잘 기억나진 않았다. 그가 그러는 사이, 타지마가 성만은 희미하게 기억하고 있는 소녀가 두 사람을 떠밀었다.
“자, 자. 도와주기로 했잖아?”
구두는 아무거나 신으면 돼. 하고 그녀가 가리킨 곳엔 납작한 단화 한 켤레와 높고 빨간 하이힐이 남아 있었다. 타지마는 한손에 두 켤레를 전부 쥐었다. “미하시! 뭐가 좋아?” 미하시는 그 질문에 고개를 좌우로 휙 휙 휘저었다. 어느 쪽도 별로 좋은 선택은 아니어 보였다. 미하시의 반응에 타지마가 한 번 더 미하시를 불렀다. “미하시, 자!” 타지마의 목소리에 미하시가 어깨를 움찔하곤 다시 앞을 보았다. “가위, 바위, 보!” 미하시는 가위, 바위 까지 히익 소리를 내며 망설이다가 결국 주먹을 내었다. 보, 소리와 함께 타지마는 한참 전에 보를 내고 기다리고 있었다. 져 줄 생각이었던 타지마는 미하시가 주먹을 내자 웃음을 참았다가도 결국 소리 내어 웃으며 빨간 하이힐을 미하시에게 가볍게 던졌다. 미하시는 허둥지둥 날아오는 구두를 쥐었다. 빨간 에나멜 힐.
타지마는 훌렁 훌렁 옷을 벗기 시작했다. 별로 유난스러운 편이 아닌데도 미하시는 황급히 몸을 돌리고 옷을 벗지 않은 채 그 위에 받은 유니폼을 입기 시작했다. 하얀 블라우스 위에 덧입은 하얀 블라우스가 목을 조금 조였다. 치마를 입고, 앞치마는 어떻게 해야 할 줄 몰라 옆에 개어둔 그대로였다. 그리고 내려두었던 구두를 손에 쥐고, 미하시는 한참이나 헤매어야 했던 것이다.
“쨘. 이거 봐.”
웃기지! 하고 말하며 우하하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돌린 타지마는 미하시와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미하시는 유니폼을 입고 구두를 신기 위해서 자리에 앉아 낑낑 거리고 있었다. 타지마는 미하시의 앞으로 섰다. 도와줄게! 하고 자신만만하게 말하곤 타지마는 손에 힐을 쥐었다. 운동을 하는 발은 거칠지만 얇고 단단했다. 타지마는 미하시의 발목을 들고 구두를 신겼다. 빨간 구두는 윤기가 났는데 생각보다 뻑뻑한 감촉이었다. 그 느낌이 글러브랑 비슷하다고 타지마는 스치듯 생각했다. 발 가운데를 길게 잇는 일자 스트랩을 잘 맞추고, 두꺼워서 꼭 족쇄 같은 스트랩을 금색 체인을 끌어 채우고 나자 흰 발목이 더 얇게 두드러졌다. 두 줄짜리, 발등을 얇게 가리는 체인이 달리지 않은 스트랩의 양 옆이 조금 비었다. 미하시 발은 얇구나. 하는 생각은 용케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됐다, 고 말하며 타지마가 웃는 모습을 미하시는 생각을 비우려고 노력하듯 조용히 보고있었다.
“조이지 않아? 너무 힘줬나?”
“…….”
“미하시?”
“…….”
“렌?”
미하시는 타지마의 부름에 고개를 들었다. 으, 으, 응? 학년이 오르고서도, 의기소침해지는 버릇은 줄어도 말을 더듬는 버릇은 여전히 남아있었다. 모두들 익숙해져서, 아무도 그렇게 신경 쓰지 않게 된 버릇이 타지마는 한 번도 덜 신경 쓰였던 적이 없었다. 거듭 되는 짧은 소리는 꼭 여전히 뭔가를 삼키는 것 같았다. 숨을 들이마시는 호흡이 신경 쓰이지 않으면, 그것은 그것대로 이상한 것이었다. 미하시의 뺨이 조금 붉었다. 미하시는 쉽게 뺨을 붉힌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타지마는 한 번도 그가 덜 사랑스러웠던 적이 없었다.
타지마는 여전히 제 손 위에 쥐어져 있는 그의 발에 짧게 입을 맞췄다. 가장 낮은 스트랩 아래로 훤히 드러난 발등엔 상처가 있었다. 발톱도 이곳저곳 깨져 있어 짧고 울퉁불퉁했다. 타지마는 그것이 좋았다. 노력하는 것을 대단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연인의 과분히 겸손한 발. 미하시는 힉, 하고 숨을 삼켰다. 놀란 목소리였다. 타지마는 그의 발등을 일자로 가린 스트랩에도, 도드라진 복사뼈에도 아낌없이 입술을 대었다. 미하시는 놀라 있으면서도 타지마를 밀어내지 못했다. 타지마의 입술은 발끝에서 시작해 천천히 올라가 무릎까지 닿았다. 그곳에서야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타지마는 미하시의 다리를 쥔 손을 놓고 웃었다. “렌, 설 수 있겠어?”
그 말에 마법에서 풀려나기라도 한 것처럼 미하시가 응! 하고 큰 소리를 내곤 벌떡 일어났다. 한 뼘은 되는 굽을 신고 갑자기 일어나는 바람에 곧 주저앉아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휘청거렸다. 타지마는 그런 미하시를 재빨리 잡아 받쳤다. 미하시는 타지마의 팔에 붙들린 채 불편한 듯 치마를 잡아끌었다. 길이가 아니라 감촉의 문제였기 때문에 끝단을 잡아끈다고 해도 별로 도움이 되진 않았다.
걸어 봐, 하는 말에 미하시가 걸음을 내딛었지만 한 걸음 한 걸음이 어색했다. 타지마의 손을 쥐고 내딛는 데에도 마찬가지여서, 타지마는 흠, 하고 눈썹을 찌푸렸다. 안되겠어. 하고 말하는 목소리에 미하시가 타지마를 내려다보았다. 힐을 신고서는 미하시의 키가 타지마보다 훌쩍 컸기 때문이었다.
“다치면 안 되잖아.”
렌은 우리 에이스니까. 신발 바꾸자. 하고 말하는 타지마의 말에 미하시가 뒷걸음질을 치며 고개를 저었다. “나, 나.” 괜찮아. 미하시는 고개를 푹 숙였다. 숙이고서도 두 사람이 눈을 마주칠 수 있었기 때문에 그건 미하시에겐 그렇게 큰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유, 우도, ……니까.” 아주 작게 흘러간 미하시의 말을 타지마는 알아들었다. 타지마는 눈을 크게 떴다가, 곧 웃어버렸다. “좋아, 그럼 이렇게 하자.” 우리 둘 다 신발을 벗고 나가는 거야! 미하시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으, 응. 타지마는 다시 미하시가 신발을 벗을 수 있도록 다시 한 번 도와주었다. 마지막으로 그곳을 쓸 예정이었던 두 사람이 나가고, 빈 탈의실엔 구두 두 켤레만 뒤엉켜 누워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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